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오면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시험을 치고 나면 등수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에 중1때 나는 반에서 10~20등 사이를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뭔가 중학교 공부는 어려웠다.

 

그리고 중학교 생활도 적응이 처음엔 어려웠다.

 

남중을 다녔는데, 남중 특유의 그 거친 문화가 별로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입시 경쟁, 그로 인한 건조한 학급 분위기도 별로 였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학생으로 지내고 있던 내가

 

중2가 되면서 성적의 퀀텀 점프를 하게 된다.

 

그 비결은 바로 수학 점수의 급등.

 

그리고 그러한 급등의 배경에는 "육영학원" 그리고 "한미경" 선생님이라는 분과의 만남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신세계학원" 이라는, 경주에서 나름 유명한 학원을 다녔다.

 

지역방송 한정이긴 하지만 TV광고도 때리고

 

당시 6, 7층 학원 사옥을 짓고, 그 사옥 전체를 학원 건물로 쓰는!!! 경주 지역 최대의 학원이었다.

 

그런데 그 신세계 학원이 망하고

 

신세계 학원의 주요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다시 세운 학원이 육영학원이었다.

 

운명이었던건지, 육영학원은 내가 중학교때 이사간 집으로 부터 직선 거리 1km도 안되는 가까운 곳에 생겼다.

 

그리고 그 육영학원의 종합반 수업을 들으면서

 

주말에는 한미경 선생님의 수학 특별과외도 받았다.

 

그땐 그냥 보충수업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학원 + (부모님의 추가 지출이 들어간)과외의 이중 학습을 한 것이었고

 

과외선생님이 육영학원 한미경 선생님이었다고 볼수 있겠다.

 

나랑 내 동생이 함께 한미경 선생님께 과외를 받았는데

 

선생님과 케미는 내 동생이 더 잘 맞았고

 

나는 선생님과 학습법이 잘 맞았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중2때 개념원리 수학책으로 선생님과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인수분해를 아주 재미있게 풀었던 기억이 난다.

 

개념원리 연습문제집인가 거기에

 

인수분해가 한페이지 가득, 내 느낌상으론 100문제 정도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는데

 

그걸 다 풀고, 정답을 맞추는데 거의 다 맞아서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사실 뭐 성적이 오를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고, 또 성적 욕심도 많지는 않았다.

 

어쨋든 그 선생님과의 특훈 덕분에

 

중2 첫 시험 성적표를 받았을때, 반에서 2등, 전교에서 6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기억이 난다.

 

실제로 시험 문제도 술술 풀려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고

 

중1때에 비해 확 올라간 성적표를 들고 한미경 선생님과 함께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그때 공부와 성적이 일종의 기초체력이 되어서

 

중학교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고

 

고등학교 입시도 큰 어려움 없이 경주 지역 1티어 고등학교에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것 같은데, 우리 지역은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여서 입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미경 선생님께 고맙다. 나 같은 아이가 공부라도 못했으면,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공부라도 좀 해서, 결국 인서울 대학교에 가서 졸업까지 한 덕에

 

지금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육영학원 이야기는 공부 보다는, 역동적이었던 원우 관계가 더 핵심인데ㅋㅋ

 

글이 더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편에 쓰겠다.

 

 

덧글.

경주 같은 작은 도시도 사교육 열풍이 대단했어서

 

육영학원 맞은 편에는 양진학원, 동천동엔 금터학원, 등용문학원 등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학원들이 몇군데 있었다.

 

당시에는 학원 전단지에 선생님들 사진과 이름을 박아놓고, 주요 이력을 쓰는게 트렌드였다. 

 

마트 전단지 같은 스타일에 선생님들 리스트가 쫙 인쇄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Posted by sticker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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