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언제 바뀌었나 찾아보니 1996년이란다. 나는 졸업을 95년도 2월에 했으니, 두살만 젊었어도 입학은 국민학교, 졸업은 초등학교로 했을것이다.
나는 계림국민학교 86회 졸업생이다. 지금은 100년도 훨씬 넘은, 나름 역사가 있는 학교이다. 그렇다고 내 삶에 뭐 도움이 딱히 된 건 없지만.
국민학교 6년을 총평하자면, "괜찮았다"
특별히 나쁜 기억 (왕따를 당했거나 등)은 없다. 물론 상처와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생활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공부는 꽤 잘해서 성적표를 받으면 대부분 "수"가 찍혀있었는데, 그렇다고 "올(All) 수" 를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운동회 때 마다 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서, 한 5~8명을 기계적으로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전교생과 학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달리기 실력을 커밍아웃해야 하는, 아주 부담스럽고 비인격적인 시합이었다. (하지만 정작 다들 자신의 성적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끽 해야 우리 줄에서는 누가 1등했나 정도?)
나는 매학년 때마다 달리기에서 대부분 2~3등을 했고, 그 성적에 아주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바로 내 성격을 나타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뒤쳐지기 보다는 앞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1등이 되거나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은.
국민학교 6학년 때는 방송반을 하였다. 내 장래희망이 아나운서였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의 가장 최초의 장래희망을 가진건 5살 때쯤이고, 직업은 소방관이었다. 그 이유는 레고 장난감에 나오는 소방관이 멋있어보여서 였던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께 내 장래희망을 말했을때, 아마도 아버지가 "그 위험한 걸 뭐할라고 할라카노" 라고, 미취학아동에게 뭐 그렇게 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말을 하셔서 그 꿈을 포기(?)했다.
나에게 새로운 장래희망이 생긴건 초등학교 입학 후 였다. 그때 처음으로 야구에 눈을 떴고, 나는 드디어 새로운 장래희망을 "야구선수"로 정했다.
그런데 어느날 티비를 보다가, 야구선수의 하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른건 다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야구 선수가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 냉수마찰을 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또 다시 장래희망을 포기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야구선수를 꿈꾸며 야구 연습 (사실은 놀이)을 하는 동안, 입으로 계속 야구 아나운서를 따라하며 흉내내며 놀았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장래희망을 아나운서로 정했다. 국민학교 4학년때쯤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장래희망이 아나운서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약 5년전 소방관을 말했을때와는 다르게 아주 만족하시는 표정을 지으셨다. 드디어 나도 좋고 부모님도 좋아하는 꿈을 찾았구나!!!
나는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6학년이 되어 방송반에 지원을 했다. 방송반은 나름 테스트도 거쳤는데, 나는 우리집에 있는 역사 사진 책에서 한 유물을 픽하여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그 테스트를 위해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그 책의 사진을 가위로 잘라 종이에 붙여 프레젠테이션까지 한 끝에 합격하였다.
방송반이 되고 나서 깨달았는데, 그곳은 인싸들의 집합처였다. 방송반은 매주 1회씩 교내 전체 티비로 자기 얼굴이 팔리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1,500명 정도 되는 전교생들에게 얼굴이 송출되는 엄청난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권력이나 인기에 관심이 없었고, 오직 내 꿈인 아나운서를 위해 지원하였기 때문에, 방송반에 모인 다른 인싸 친구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는, 전교 회장 선거 시즌에 친구 한명이 나에게 와서 "야, 니 왜 전교 회장 선거 안나가노?"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뜬금없이 왠 전교회장 출마를 묻지 싶었는데, 그 친구의 말이 "원래 방송반 하면 다 전교회장 선거 나가는거 아니가?" 라고 물었다. 그렇다. 방송반은 인기와 권력을 얻고, 그를 토대로 "정계로 진출"하는 전형적인 루트였던 것이다.
나는 세상을 너무 순수하게 산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세속적 권력에 대한 욕심없이 오로지 순수하게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마음만 가진채 끝내 "불출마"를 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의 장래희망은 계속 아나운서였다. 가정통신문 한켠에 선생님께서 "아나운서의 꿈을 꼭 이루길 바란다" 라는 글도 써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꿈을 포기하게 된건 이번에도 티비 때문이었다.
어느날 티비를 보다가, 아나운서의 하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른건 다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아나운서가 아침 뉴스를 위해 새벽 3시인가 4시에 출근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그게 매일 반복된다는 내용을 보고, 나는 또 다시 장래희망을 포기하였다. 중 2때 쯤이었던 것 같다.
쿠키글 :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방송반에 합격한 것은 부모님의 채용 비리(?) 덕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내가 방송반 지원할 당시 우리 어머니가 나랑 같은 학교의 교사였던 기억이.............
나중에 꼭 어머니에게 이 의혹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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