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부모님이 부부 교사였었다. 당시에는 맞벌이가 아주 흔한 경우는 아니었고, 당시에는 육아 휴직, 육아 시간 같은 개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일 하시는 동안 나와 내 동생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우리 아버지가 장남이었기 때문에, 필요와 정황에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되셨다.
내 기억속에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사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게 얼마나 힘들지.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다정다감한 스타일도 아니고.
어머니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였던 내 시각에서는
엄마는 왜 저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번은 어렸을 때 내가 어머니한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었으면 좋겠나? (혹은 죽었으면 좋겠나ㄷㄷㄷㄷ)"
그냥 옆에서 지켜보니 어머니가 워낙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해서, 정말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어봤었다.
내 기억에 엄마는 크게 당황은 하지 않았지만
"그건 아닌데, 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힘들때가 있지"
라고 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께서 가장 크게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폭군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으신 건,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쯤, 우울증에 걸리셨고 알콜 중독 증세를 보이셨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우리 부모님은 부부 교사셨고, 경주라는 좁은 동네에서 교사들 사이의 소문을 빠르게 퍼지는게 뻔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나와 내 동생에게 "혹시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너거 아버지 우째 되셨노 라고 묻거든, 무조건 모른다고 해래이" 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각자의 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심지어 우울증에 걸리신 아버지로부터도
나름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나에 대한 학대나 폭력은 없었고, 크게 무관심하거나 방임하지도 않으셨다.
어쨋든 가정에 대해서는 크게 고마운 마음도, 크게 분노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이고 살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나쁜 가정 환경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힘들었던 점, 불만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내가 긍정적인 건지 어떤 건지 지금도 가정에 대한 분노나 아쉬움은 크게 없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있다.
그래도 아들에 대한 나름의 투자를 아끼지 않으셨고, 보호해주셨고, 참아주시며 나를 키워주셨다고 생각한다.
덧글 :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너무나 갑작스럽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셨지만, 크게 비관하지 않으셨으며 80세쯤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할머니와 좋은 기억이 많다. 잠도 같이 많이 잤고,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도 많이 해주셨으며, 젊으셨을때는 나랑 배드민턴도 많이 쳐 주셨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우울증과 알콜 중독 증세가 호전되었나 악화되었다를 반복하셨고 결국 할머니 장례 후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안타까운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또 한번 더 깊은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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